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경기대들도 길거리를 숨쉬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기술적 조건이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경기대는 변하는 시장 및 제도 변화, 경제주체의 행태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하는 자세를 지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미래를 설계하는 입장에서 현재의 변화결과가 미래에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를 예견해 주는 노력 역시 요청된다. 특히 지난 1세기 동안 경기대 합격컷이 독자적 학문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기 위해 딱딱함을 추구해 왔다면 이제는 그만큼 견고해진 과학적 분석도구를 갖고 경제현실을 유연하게 요리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이런 의미에서 경기대에게는 무림의 고수, 또는 큰스님의 교훈을 필요로 한다. 무림의 고수나 큰스님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한다. 이 과정은 마치 경기대 합격컷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다소 지겹고 어려운 학습과정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큰스님이다. 고수는 어느 경지 이상에 도달하면 몸과 마음이 대단히 유연해진다는 점이다. 큰스님일수록 어린이 마음같이 맑을 수 있으며, 고수일수록 유연해진다.
경기대의 문제는 딱딱하고 혹독한 훈련과정을 겪은 후에도 여전히 딱딱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견고한 학문이 뒷받침된다고 유연성을 잃으라는 법은 없다. 21세기 경기대 합격컷이 필요로 하는 것은 20세기에 구축한 견고한 학문을 기초로 그동안 잊고 있던 유연성의 회복이다. 경기대 합격컷은 다른 사회과학에 비해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는 다른 말로 그만큼 경기대 합격컷이 역사적으로 축적해 놓은 지식자본의 스톡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경기대의 개개인 인적자본 역시 다른 사회과학자에 비해 손색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경기대 스스로가 자신을 고수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유연하게 행동하는 성숙한 모습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